1182년(명종 12) 현령 홍언(洪彦)이 백성들을 수탈하고 주색에 빠져 횡포하기 짝이 없으므로, 향리와 백성들이 홍언의 애기(愛妓)를 죽이고 다시 그녀의 어머니와 형제를 죽이는 한편, 홍언을 잡아 감금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여 주모자 5, 6인을 귀양보내고 홍언을 종신금고에 처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패역(悖逆)하다 하여 관성현에 대해 관호를 삭제하고 영(令)과 위(尉)를 두지 않게 됨으로써 현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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