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오면수의 현손(玄孫) 오종진(吳宗鎭)과 족인(族人) 오철환(吳喆煥)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이 없고, 권말에 오종진의 발문이 있다.
7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부 1편, 시 400여수, 권2에 책(策) 2편, 논 3편, 변 1편, 서(書) 45편, 문목(問目), 권3에 잡저 13편, 서(序) 6편, 기 5편, 설 4편, 혼서(婚書) 1편, 문(文) 3편, 축문 1편, 제문 4편, 행장 2편, 권4에 괴옹집성(怪翁集成)·잡지(雜識), 권5·6에 만록(晩錄) 상·하, 권7에 부록으로 서(序)·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사불우부(士不遇賦)」는 훌륭한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등용되기 어려운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다. 시에는 「강중암화(江中巖花)」·「정전촉규화(庭前蜀葵花)」·「운수팔경(雲水八景)」 등의 서정시와 교훈적 성격이 짙은 「자견(自遣)」·「자계(自誡)」 등을 비롯하여,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취한 「예양(豫讓)」·「항우(項羽)」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소재를 다룬 시들이 고루 실려 있다.
책으로는 그가 철종 때 어명으로 국가재정의 기반인 삼정의 문란에 대해 정연한 논지를 전개해 지었으나 올리지 않은 「어제삼정책(御製三政策)」과 이도재(李道在)가 고을에 수령으로 재직하면서 교육풍토의 쇄신을 위해 그에게 요청해 교육의 이념과 취지 등에 대해 서술한 「대흥학지방(對興學之方)」이 있다.
논에는 치밀한 구성과 폭넓은 비유체로 쓴 「참론(僭論)」·「예양국사지보론(豫讓國士之報論)」·「범증론(范增論)」 등과 한유(韓愈)의 성삼품설(性三品說) 등을 논한 「논이공원성서(論二公原性書)」·「여인논성(與人論性)」 등이 있다. 변의 「변허미수예론(辨許眉叟禮論)」과 서(書)의 기정진(奇正鎭)·홍순목(洪淳穆)·이승경(李承敬)·이도재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훌륭한 글로 돋보인다.
잡저에는 그가 평생 동안 세속적인 출세에 초연하게 처하면서 연마한 학문적인 연구 성과가 집약된 「왕패문답(王覇問答)」·「체용문답(體用問答)」·「예의(禮疑)」·「석무변(釋無辨)」 등과 당쟁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견문잡록(見聞雜錄)」·「분론대개(分論大槪)」 등이 있다. 또한, 임진·정유년의 두 왜란의 전투상황과 전투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약력을 발췌해 기록한 것으로 전란사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잡지」·「고사」 등과 조선 개국 때부터 우국지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만록」 등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잡설」·「서진자경통감속편후(書陳子經通鑑續編後)」·「독왕형공문(讀王荊公文)」·「국조허조소찬오례의향음주례절차(國朝許稠所撰五禮儀鄕飮酒禮節次)」·「인통사단설(仁統四端說)」 등을 비롯해 자료적인 측면에서 귀중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