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구고사는 원래 김완의 충절을 추모하는 사우로 1640년(인조 18) 창건하였으나 뒤에 문중 선조인 김진문(金振門), 조카인 김여준(金汝峻, 1616∼1659), 김여옥(金汝沃, 1641∼1686)을 합향하게 되었다.
1889년(고종 22) 불에 탄 뒤 194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중건하였다. 1979년과 1983년에 고쳤다. 부조묘는 김완의 신위를 모시고 제향하며 김완 초상(보물, 2000년 지정)을 모신 영당이 있다.
김완은 영암군 서호면 몽해(夢海)에서 극조(克祧)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본관은 김해이다. 21세(1597) 때 정유재란을 맞아 남원에서 공을 세웠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남功臣) 3등으로 책록되었다. 황해도병마절도를 지냈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구고사는 앞면 3칸의 맞배집이다. 1625년의 금궤철권(金櫃鐵券), 1728년의 공신록권, 5대조 김련과 김완 및 후손들의 교지 47매의 유물이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1887년에 세운 전승유허비(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가 구례군 산동면 원내리에 있고,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전라남도 기념물, 1979년 지정)는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