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다시 정언 · 수찬(修撰)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듬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 · 박순(朴淳) 등의 당여(黨與)였기 때문에, 인물됨이 청요직(淸要職)에는 맞지 않는다는 김개(金鎧)의 상소에 의해 체직당하였다. 그 뒤 진주목사로 나가서 최영경(崔永慶)과 함께 덕천동에 터를 잡고 서원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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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가정31년임자사마방목(嘉靖三十一年壬子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B13KB-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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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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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구변 체직 : 선조실록3권, 1569년(선조 2) 9월 14일. "헌부가 이조 좌랑 구변을 비루하다 하여 체직을 청하니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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