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중(時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 사망 연도1578년(선조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좌랑|진주목사
  • 출생 연도1529년(중종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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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시중(時仲). 구신충(具信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이(具頤)이고, 아버지는 정랑(正郎) 구수연(具壽延)이며, 어머니는 단산정(丹山正) 이수생(李穗生)의 딸이다. 작은아버지인 군수 구수복(具壽福)에게 입양되었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58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로 있다가 1567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다시 정언 · 수찬(修撰)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듬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 · 박순(朴淳) 등의 당여(黨與)였기 때문에, 인물됨이 청요직(淸要職)에는 맞지 않는다는 김개(金鎧)의 상소에 의해 체직당하였다. 그 뒤 진주목사로 나가서 최영경(崔永慶)과 함께 덕천동에 터를 잡고 서원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가정31년임자사마방목(嘉靖三十一年壬子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B13KB-00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구변 체직 : 선조실록3권, 1569년(선조 2) 9월 14일. "헌부가 이조 좌랑 구변을 비루하다 하여 체직을 청하니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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