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위사원종공신일등에 책록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545년(인종 1)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광덕대부(光德大夫)에 올랐으며, 1553년(명종 8) 증조부의 훈봉을 이어받아 능원군(綾原君)이 되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적구입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문인으로 자처하였다.
경사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금대봉(金臺峯) 아래에 별장을 짓고 자주 유연(遊宴)을 베풀며 즐겼다. 1548년 평소 친교가 두터웠던 윤결(尹潔)과 그 아우 윤준(尹浚)이 을사사화의 시말을 시정기(時政記)에 기록하였다가 처형당한 사관 안명세(安名世)와 내통하였다고 밀계하여 마침내 이들을 죽게 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중종실록』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조야집요(朝野輯要)』
- 『이암유고(頤庵遺稿)』(송인(宋寅))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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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인물고』 권6, 구사안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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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원위 제수 : 『중종실록』 74권, 1533년(중종 28) 3월 21. "구사안·최세절·정옥형·이현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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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구사안의 밀계 : 『명종실록』 8권, 1548년(명종 3) 6월 24일. "능원위 구사안이 올린 좌랑 윤결의 행동에 대한 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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