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이다. 1537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조좌랑(禮曹佐郞), 강원도사(江原都事), 전라도사(全羅都事),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 등을 지냈고,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송당(松堂) 박영(朴英)과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제자이다. 편자는 저자의 7세손 김태화(金太和)이다.
『구암집(久庵集)』은 3권 2책의 활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태화가 1791년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간행했다. 이후 중간본이 간행된 바 있으며, 이 중간본을 저본으로 한 국역서가 1993년에 간행되었다.
권수에는 1789년에 지은 김종수(金鍾秀)의 서문이 있다.
권1에는 시(詩) 7제, 소차(疏箚) 3편, 계(啓) 9편, 서(書) 5편, 기(記) 2편, 제발(題跋) 2편, 잡저(雜著) 4편이 실려 있다. 시는 강원(江原) 도사(都事) 재임 시에 지은 「유관동(遊關東)」과 박운, 이현보(李賢輔), 송희규(宋希奎)를 애도한 만시(輓詩) 등이다. 소차 가운데 「청정상례소(請正喪禮疏)」는 중종의 상례(喪禮)를 올바로 시행할 것을 건의한 상소이고, 계사 가운데 「정원계(政院啓)」는 1569년 좌부승지로서 김개(金鎧)를 탄핵한 내용이다. 서는 박운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기 가운데 「진재기(進齋記)」는 김희삼(金希參)의 서재에 지어 준 것이다. 「심천사기(深泉寺記)」와 잡저의 설 4편에는 불교에 대한 견해가 나타나 있다.
권2에는 잡저 4편, 묘갈(墓碣) 1편, 묘지(墓誌) 5편이 실려 있다. 잡저는 오자서(伍子胥), 서불(徐巿), 전횡(田橫)에 대한 논(論) 3편과 1537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을 때의 시권(試券)인 「치도책(治道策)」이다. 묘갈은 저자의 부친 김광좌(金匡佐)에 대한 글이며, 묘지는 저자의 큰형 김취성(金就成)과 송희규, 박운 등을 대상으로 지은 것이다.
권3은 타인의 글을 모은 부록으로, 저자의 행적에 대한 묘도문자(墓道文字)와 제문(祭文) · 만장(輓章)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오재순(吳載純)의 발문이 실려 있다.
퇴계 이황의 인정을 받은 명망 있는 학자의 시문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