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한백겸의 무덤. 신도비.
내용
1585년(선조 18) 천거로 교정낭청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의 교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풀려나 호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09년(광해군 1)에는 호조참의로 대동법을 경기도에 시행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 때 사직하고 독서와 저술에 힘쓰다가 한성(漢城) 물이촌(物移村)에서 별세하였다.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를 저술해 뒷날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원주 칠봉서원(七奉書院)에 제향되고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한백겸의 묘는 조부 한여필(韓汝弼)의 묘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묘역은 약 250여평 정도로, 봉분을 비롯해 묘비(墓碑) · 상석(床石), 그리고 문인석(文人石)과 망주석(望柱石) 1쌍이 있다.
묘역은 조성 후 변경되지 않고 처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묘비는 대석(臺石)과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증영의정구암공한백겸지묘증정경부인능성구씨(贈領議政久菴公韓百謙之墓贈貞敬夫人陵城具氏)”라고 새겨져 있고, 크기는 175×64×20㎝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상석은 직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화강암의 판석(板石)을 얹었는데, 180×105×30㎝ 크기이다. 그리고 묘역의 전면 좌우에 문인석과 망주석이 있는데, 크기는 각각 210㎝, 200㎝이다.
신도비는 묘소로부터 약 200m 떨어진 산아래 진입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1644년(인조 22)에 세웠다. 이것은 귀부(龜趺) 대좌 위에 높이 275㎝, 폭 125㎝, 두께 40㎝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며, 전체 높이가 450㎝ 정도로 매우 크다.
풍수지리의 방수(防水) 개념에서 귀부의 거북머리가 뒤쪽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문은 정경세(鄭經世)가 짓고, 오준(吳埈)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광욱(金光煜)의 글씨다.
참고문헌
- 『경기인물지』(경기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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