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양서관향사,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 계축옥사에 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으며, 1617년 폐모논의를 위한 정청(庭請)에도 참가하지 않아 삭직되자 고양(高陽)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고산찰방(高山察訪) · 고원군수(高原郡守) · 판교(判校) · 홍주목사(洪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로 국가재정의 확보에 큰 공을 세웠다. 164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고, 경직에 돌아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644년 부승지 겸 세자빈객으로 세자를 모시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도승지 · 병조참판 · 호조참판을 거쳐 경기감사로 나가 수원부사 변사기(邊士紀)의 모역사건을 밝혀냈다.
효종 즉위 후 개성유수에 보임되었으며,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지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문예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장릉지장(長陵誌狀)』 을 찬하였다. 저서로는 『죽소집(竹所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만력34년병오9월초10일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四年丙午九月初十日增廣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想白古351.306-B224s-157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죽소집 : 『죽소집(竹所集)』(한국문집총간)
-
주4
: 시호 추증 : 『영조실록』 68권, 1748년(영조 24) 10월 3일. "민백창·홍낙성·권항·조운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