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총융사, 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56년(효종 7) 금부도사가 되고, 1658년에 횡성현감으로 나가 묵은 땅을 개간하는 등 치적이 있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664년(현종 5) 남평현감을 거쳐, 1667년에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이 되었다. 1668년 무과 별시에 급제해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 · 훈련원부정을 역임하고 이듬 해 홍양영장(洪陽營將)이 되었다. 이 때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 왕의 특령으로 해직을 허락받았다.
1670년에 장단부사가 되고 얼마 뒤 황해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72년에 경기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병으로 그만두었다. 1674년 금군별장(禁軍別將)을 거쳐 1675년에 한성부우윤으로 승진되고 총관(摠管)이 포도대장을 겸하였다.
1678년(숙종 4) 능평군(綾平君)으로 봉해지고, 이듬 해 당시 영의정 허적(許積)의 아들 허견(許堅)이 세력을 믿고 양가의 부녀를 겁간한 일이 있자, 그 죄를 다스리다가 오히려 무고(誣告)를 입어 김해에 유배되었다.
1680년 특별히 한성부판윤 겸 총융사(摠戎使)에 임명되고, 1688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당해 송추에서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 등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서계집(西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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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권 65, 구일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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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사 급제 : 『임오식년사마방목(壬午式年司馬榜目)』(국사편찬위원회[MF A지수10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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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무과 급제 : 『현종실록』 15권, 1668년(현종 9) 9월 17일. "삭시에서 1등한 전 첨정 구일을 직부 전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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