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청의 문인 남형회(南亨會)와 손자 김양렬(金楊烈) 등이 수집하고, 현손 김이명(金爾銘)과 5대손 김태운(金泰運) 등이 교감하여 1826년(순조 26) 간행하였다. 이광정(李光庭)·김정균(金鼎均)의 후서가 있고, 김시찬(金是瓚)의 발이 있다.
8권 4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3에 사(辭) 1편, 부 2편, 시 390수, 권4·5에 교서 2편, 소 7편, 계사 2편, 서장(書狀) 7편, 책 1편, 서(書) 11편, 녹(錄)·변(辨) 12편, 서(序) 4편, 기 2편, 발 3편, 명(銘) 5편, 권6에 전(箋) 3편, 축문·제문 39편, 행장 1편, 권7에 부록으로 연보·행장 각 1편, 만사 23수, 제문 2편, 연행증유(燕行贈遺) 24수, 시장(詩章) 1편, 상량문·봉안문·상향축문·봉안축문 각 1편, 권8에 조천록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교도의부(作橋渡蟻賦)」는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개미떼에게 다리를 놓아 건네주어 그 공덕으로 입신출세했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작은 선행이라도 행하면 공덕이 쌓여 의외로 좋은 일이 생긴다고 선을 권장하였다. 「임진의병시의상소(壬辰義兵時擬上疏)」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번 치른 격전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고, 난리에 시달리는 민생의 참혹한 모습과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병기와 식량의 조달책 등을 건의한 것이다.
「조천정예부청면연문(朝天呈禮部請免宴文)」은 1614년(광해군 6) 조천사(朝天使) 허균(許筠)의 수행원으로 중국에 갔을 때 예부에서 연회를 베풀자 그곳에 참가할 수 없는 사유를 들어 중지해줄 것을 청한 것이다. 이 글에는 중국의 외국사신에 대한 접대절차와 사신으로서의 체모를 지키려는 우리나라 수행원의 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제임진년창의병총록(題壬辰年倡義兵總錄)」은 임진왜란 때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의병들의 활동내용을 총정리한 것으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중심으로 활약한 곽재우(郭再祐)를 비롯하여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조헌(趙憲) 등 당시의 의병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도 학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상월천선생(上月川先生)」과 「답한강선생(答寒岡先生)」 등 이황의 제자와 교환한 서간이 있고, 가뭄에 비를 내려줄 것을 역대 임금에게 청한 「종묘기우문(宗廟祈雨文)」이 있다. 「문견사건말단헌설(聞見事件末端獻說)」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사신들이 지키고 시정해야 할 것들을 왕에게 건의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