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대사헌,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 권대운과 함께 남인의 처지를 고수하여, 1694년 갑술환국 때는 당진으로 유배되었다가 1697년 풀려났다. 그 뒤 노 · 소론의 대립에서는 소론의 처지를 도와, 1721년(경종 1) 세제(世弟) 연잉군(延礽君)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722년 신임옥사로 소론이 집권하자 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소론 조태억(趙泰億) 등의 주장에 의해 공조판서에 추증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직첩을 빼앗겼다. 전서(篆書)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경종개수실록(景宗改修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호보(號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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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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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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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대리청정 반대 상소 : 『경종실록』 5권, 1721년(경종 1) 10월 15일. "사직 권규 등이 조성복을 참수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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