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66년 병조좌랑이 되고 이후 사헌부지평 · 사간원헌납 · 병조정랑을 역임하고,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으로 『명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하였다. 1570년(선조 3) 부수찬이 되고 1572년 원주목사가 된 뒤 길주목사로 임명되었다가 의주에 기근이 들자 다시 의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충청감사를 지내고 판결사 · 우부승지를 지냈으며 1581년 호조참판에 재직시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83년 함경감사에 제수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가, 8월에 다시 직첩을 환급받고 경상감사에 임명되었으며 곧 대사성과 대사헌을 지냈다.
1588년 조헌(趙憲)의 상소에서 노수신(盧守愼) · 정유길(鄭維吉) · 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붕당을 이루고 있다고 탄핵받았다. 1589년 박충간(朴忠侃) 등과 함께 정여립(鄭汝立)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였고, 그해 겨울 행해진 도목정사(都目政事)에서 예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이조판서에 오른 뒤 죽었다. 성격은 과묵하고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였으며, 정치에 있어서는 대체(大體)를 지키고자 할 뿐 별다른 창의성은 보이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월사별집(月沙別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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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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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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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명종실록 편수 참여 : 『명종실록』 1권, 편수관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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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헌의 상소 : 『선조실록』 22권, 1588년(선조 21) 1월 5일. "조헌의 상소를 소각하고 내리지 않았는데 거기에 실린 동·서 각인들의 관계와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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