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지(正之), 호는 청하(靑霞). 전라도 고부(古阜)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임진왜란을 겪었고 13세부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인 최명룡(崔命龍)에게 수학하였다. 그는 최명룡의 문하에서 유집(柳輯)·김동준(金東準) 등과 교분을 맺으며 평생의 지기로 지냈다. 최명룡에게 성리학을 배우는 한편, 최명룡의 지도로 조찬한(趙纘韓)을 따라 시문을 배웠다.
16세 때 연산(連山)에 있던 김장생을 찾아가 학문을 담론하였다. 28세 때인 1612년(광해군 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잠시 태학(太學)에 유학하였으나 곧 낙향하였다. 그 무렵 인목대비의 폐출소식을 듣고 크게 낙담하여 은둔의 삶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정두경(鄭斗卿)·이식(李植)·임전(任錪) 등과 교유하는 한편, 내단사상(內丹思想)에도 침잠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하집 靑霞集≫을 비롯하여 ≪참동계주해 參同契註解≫·≪역대사요 歷代史要≫·≪비요복서결 備要卜筮訣≫등이 있으며, 이 밖에 <경연의대 經筵疑對>·<중흥십조 中興十條> 등의 글도 남아 있다. ≪청하집≫은 1704년(숙종 30)에 전라도 관찰사 민진원(閔鎭遠)에 의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그 안에는 그의 시문과 성리학에 관한 담론내용인 <독서록 讀書錄>이 실려 있다.
≪참동계주해≫(필사본)는 55세(1639) 때의 작품으로 내단사상의 기본 경전인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를 주석한 것으로서 조선 도교사상을 대표할 만한 저서이다. 그는 ≪참동계주해≫에서 유가와 도가를 회통하려는 ≪주역참동계≫의 입장을 받아 들이면서 선불교의 사상도 적극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하여 역(易)에 의거하여 내단사상을 정초(定礎:주춧돌을 놓다)한다는 단역참동론(丹易參同論), 선불교와 내단사상이 하나로 귀일한다는 선불동원론(仙佛同源論), 선불교의 마음 수련과 도교의 전통적 기(氣)의 수련을 함께 갖춘다는 선단호수론(禪丹互修論) 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