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전라감사, 홍문관제학,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60년(현종 1) 전라도도사 역임시 과거 시관으로서 물의를 일으켜 파직되었고, 1666년 공산판관(公山判官) 때에는 소송자를 함부로 죽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격화된 당쟁의 와중에서 남인으로 처신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직 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예송(禮訟)을 거친 뒤 남인이 정권을 잡자, 승지 · 영남순무사 · 대사간 · 대사헌 ·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면서, 송시열(宋時烈)의 처벌을 적극 주장했다. 남인이 허목(許穆)을 중심으로 하는 청남(淸南)과 허적(許積)을 중심으로 하는 탁남(濁南)으로 분열되자 청남에서 활동하였고, 1679년 청남이 정권에서 물러나면서 종성부사(鍾城府使)로 쫓겨났다.
그 해 10월에 전라감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경신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정권을 잡자 영변(寧邊)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정권을 잡자 홍문관제학으로 등용되었다. 같은 해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주전(鑄錢)을 반대하였고, 송시열과 김수항(金壽恒)을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저서로는 『독역수차(讀易手箚)』 · 『중용변의(中庸辨疑)』 · 『사림평요(士林評要)』 · 『남위록(南爲錄)』 · 『광산록(光山錄)』 · 『용문록(龍門錄)』 · 『초산록(草山錄)』 등이 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옥천집(玉川集)』
- 『병술3월○일을유식년사마방목(丙戌三月○日乙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1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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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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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시 급제 : 『병술3월○일을유식년사마방목(丙戌三月○日乙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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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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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종성부사 임명 : 『숙종실록』 8권, 1679년(숙종 5) 6월 14일. "권대재·이석관·김성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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