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산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종부시첨정을 역임하였으나 세조 즉위 후 조정에 나가지 않았던 관리.
이칭
  • 덕보(德甫)
  • 죽림(竹林)
  • 시호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456년(세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종부시첨정
  • 출생 연도1403년(태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5년 06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종부시첨정을 역임하였으나 세조 즉위 후 조정에 나가지 않았던 관리.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 · 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이 되었다.

1455년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이겨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세조가 조정에 나올 것을 종용하였으나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성삼문(成三問) · 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건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한탄하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자손들도 백 년 동안 벼슬길이 막혔다.

상훈과 추모

1789년(정조 13) 신원복관((伸寃復官: 억울함이 풀리고 관작도 복관됨)되고 1791년(정조 15) 이조참판, 1885년(고종 22)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예천 노봉서원(魯峯書院)에서 봉향하며 경주 운곡서원(雲谷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장릉지(莊陵誌)』

  • - 『죽림선생실기(竹林先生實紀)』

  • - 『운곡서원지』(운곡서원, 대보사, 2011)

주석

  • 주1

    : 관작 회복 : 『정조실록』 27권, 1789년(정조 13) 5월 7일. "경주의 유학 권종락의 청으로 고 첨정 권산해의 관직을 회복시키다"

  • 주2

    : 이조판서 추증 : 『정조실록』 32권, 1791년(정조 15) 4월 12일. "고 첨정 권산해에게 정문을 세워주고 증직하기를 명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