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3년(숙종 29) 장령이 되고, 1706년(숙종 32) 사간을 지내고 동래부사에 이르렀다. 이때 외국과 서신을 교환하는 가운데 어휘(御諱: 임금의 성함)를 잘못 쓴 일이 있었으나 살피지 못하여, 국가를 욕되게 했다는 탄핵을 받았다.
1708년 홍문록(弘文錄)에 등록되고, 1712년(숙종 38) 향리에 물러나 있으면서 선대 세종의 선정과 학문적 열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집의가 되었으며 1714년(숙종 40) 사간이 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경연일기(經筵日記)』
- 『약파만록(藥坡慢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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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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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사 급제 : 『무오식년사마방목(戊午式年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B13LB-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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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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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선정 요청 상소 : 『숙종실록』 51권, 1712년(숙종 38) 5월 25일. "경연의 일·과거 부정의 일·북한 산성의 일 등에 대한 사간 권수의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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