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교회 ()

개신교
단체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이칭
이칭
호남선교기념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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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구암교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1893년 설, 1896년 설, 1899년 설이 있다. 이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삼느냐, 교회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1910년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고, 1913년 김필수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을 겸했다. 1915년 구암교회 교인의 수는 499명으로 증가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목차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연원 및 변천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1893년에 설립되었다는 의견이다. 1893년 1월 선교사공의회에서 호남지방을 선교지역으로 배당받은 전킨(William M. Junkin, 전위렴)과 드루(Adamer D. Drew, 위대모) 선교사는 공의회의 유일한 한국인 장인택(張仁澤)을 조사로 하여 호남선교를 시작하였다. 이 장인택 조사가 이후 구암교회의 회계집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때를 교회 설립연도로 하는 주장이 있다. 둘째, 1896년을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이것은 1896년 4월 6일 전킨 선교사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전킨과 드루는 1896년 4월 가족과 함께 군산으로 이사해 군산 스테이션을 설립하였다. 당시 50불을 주고 구입한 두 선교사의 집 가운데 전킨의 집에서는 복음선교가, 드루의 사랑방의 진료소에서는 의료선교가 시작되었다. 1896년 4월 6일 전킨의 집에서 드린 주일예배에서 장인택, 김봉래(金蓬來), 송영도(宋永道) 등 세 사람이 문답을 거쳐 원입교인이 되었는데, 이 시점을 구암교회의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셋째, 1899년이 교회 설립 시기라는 주장이 있다. 군산항이 개항되면서 일본인들이 몰려들자 전킨과 드루는 그들의 선교를 돕는 배가 정박하기 좋은 궁말의 언덕을 사서 집을 신축하게 되었고, 남장로교 선교부의 결정에 의해 군산 스테이션이 1899년 12월 21일 임피 궁말로 옮겨 첫 예배를 전킨의 집에서 드렸다. 이때 전킨의 집에서 예배드렸던 교인들이 흩어지거나 궁말교회로 옮겨오면서 궁말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1899년에 구암교회가 시작되었다는 의견이다.

궁말 언덕으로 이사 온 전킨과 드루 선교사는 이곳을 중심으로 선교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배를 타고 멀리 고군산 열도까지 다니면 열심히 전도하였다. 전킨 목사가 잠시 청나라로 여행을 가자 1898년에는 해리슨(W. B. Harrison, 하위렴) 목사가 잠시 구암교회 당회장을 맡았고, 1899년 불(W. F. Bull, 부위렴) 목사와 데비스(L. F. Davis)를 돕기 위해 엘비(L. Alby)까지 도착하여 구암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1910년 4월 9일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며 조직교회로 발전하였으며, 1913년에는 양응칠(梁應七)이 장로로 장립되었고, 개복동교회 당회장인 김필수(金弼秀)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까지 겸임하였다. 김필수 목사 재임 시절인 1914년 구암교회 교인 수는 220명이었고, 1915년에는 499명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이후 구암교회는 계속 부흥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구암교회는 알렉산더(A. J. A. Alexander)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안락소학교를 경영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1896년에는 군산영명학교(현 제일고교), 1902년에는 군산멜본딘여학교(현 영광여중고)를 세웠으며, 구암예수병원 등도 설립하여 교육과 의료사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구암교회는 한강 이남과 호남 최초의 군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1만세운동은 군산의 구암동산에서 3월 5일에 발원되어 총 28회에 걸쳐 30,700명이 참가하였고, 사망 53명, 실종 72명, 부상자가 195명 발생하였다.

현황

구 구암교회 예배당은 현재 군산시에 군산 3·1운동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기념관 안에는 초기 성경과 예배 용품을 비롯하여 만세운동에 대한 설명 및 참여자들의 사진과 그 시절의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다. 특히 내부에는 독립운동가 문용기가 3·1만세 시위 당시 입었던 피 묻은 두루마기가 전시되어 있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는데, 전면의 8개의 기둥에는 초창기 7인의 외국인 선교사인 루이스 테이트(Lewis B. Tate), 윌리엄 전킨, 메리 레이번(Mary Leyburn, 윌리엄 전킨의 부인), 팻시 볼링(Patsy Bolling, 윌리암 레이놀즈 부인),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 윌리엄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매티 테이트(Mattie Tate, 루이스 테이트의 여동생)와 한국인 조사 장인택을 기념하기 위해 각각 그 이름을 새겨두었다. 교회 뒤편에는 구암동산을 마련하여 호남선교100주년기념비와 군산 3·1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구암교회약사』
『전북의 기독교 전래』(주명준, 명문, 2003)
『호남교회 현성인물』(한인수, 경건, 2000)
『호남기독교100년사』(김수진, 쿰람출판사, 1998)
집필자
이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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