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 지중추부사 ·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한때, 강계부사 · 전라도관찰사, 1795년 강화부유수 등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병조판서로 기용되었다. 1801년(순조 1) 한직인 지중추부사로 있을 때 이가환(李家煥) · 이승훈(李承薰) · 정약용(丁若鏞) 등 천주교신자에 대한 극형을 주장하였다.
한성판윤으로 있을 때 왕의 총애를 받던 태의(太醫) 강명길(康命吉)이 민가 수십호를 옮기는 문제로 몇 차례에 걸쳐 송사(訟事)를 일으켰으나 끝내 가난한 백성들을 옮기게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목민심서(牧民心書)』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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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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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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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천주교 신자 탄핵 : 『순조실록』 2권, 1801년(순조 1) 2월 18일. "사학 죄인 정약종 등을 지사 권엄 등 63인이 연명 상소하여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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