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 지중추부사 ·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저(公著)
  • 섭서(葉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01년(순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판서
  • 출생 연도1729년(영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성 (세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2일
권엄 초상 미디어 정보

권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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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 지중추부사 ·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저(公著), 호는 섭서(葉西). 권옹(權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엄(權弇)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권밀(權謐)이며, 어머니는 유춘영(柳春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5년(영조 41)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73년 지평으로 있으면서 과거를 빈번히 실시하지 말 것을 상소하였다가 추자도(楸子島)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781년(정조 5)에 헌납(獻納)이 되고 1790년 충청도관찰사 · 대사간 · 공조판서 · 형조판서를 두루 지냈다.

한때, 강계부사 · 전라도관찰사, 1795년 강화부유수 등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병조판서로 기용되었다. 1801년(순조 1) 한직인 지중추부사로 있을 때 이가환(李家煥) · 이승훈(李承薰) · 정약용(丁若鏞) 등 천주교신자에 대한 극형을 주장하였다.

한성판윤으로 있을 때 왕의 총애를 받던 태의(太醫) 강명길(康命吉)이 민가 수십호를 옮기는 문제로 몇 차례에 걸쳐 송사(訟事)를 일으켰으나 끝내 가난한 백성들을 옮기게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목민심서(牧民心書)』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천주교 신자 탄핵 : 『순조실록』 2권, 1801년(순조 1) 2월 18일. "사학 죄인 정약종 등을 지사 권엄 등 63인이 연명 상소하여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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