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돈녕부사, 도총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금위대장 · 공조판서 · 지돈녕부사 · 도총관 · 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왕실과 인척관계가 있으므로 항상 언행에 조심하여 60년 동안 궁궐에 출입하였어도 집안사람들에게 궁궐 안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궐 일을 관장하게 되자, 더욱 근신하여 영비(營費)를 추호도 낭비하지 않고 봉직에 전력을 다하였다. 1826년 노령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승진하였다가, 서만수(徐萬修)의 무고를 받아 외진 고을에 유폐된 지 수년 만에 별세하였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매산집(梅山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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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숭정3갑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甲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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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총융사 임명 : 『순조실록』 14권, 1811년(순조 11) 5월 13일. "평안 병사 이해우를 유임하고, 이당·김기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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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효헌 추증 : 『고종실록』 13권, 1876년(고종 13) 11월 27일. "여성 부원군 민치록 등에게 시호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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