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지돈녕부사, 도총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중(士重)
  • 시호효헌(孝憲)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830년(순조 3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판윤
  • 출생 연도1747년(영조 2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성 (세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지돈녕부사, 도총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중(士重).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김지묵(金持默)이다. 현종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아버지 김우명(金佑明)의 5대손이다. 이구상(李龜祥)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4년 (영조 50) 생원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영릉참봉(寧陵參奉)이 되었고, 1811년(순조 11) 총융사(摠戎使)에 임명되었다.

이어 금위대장 · 공조판서 · 지돈녕부사 · 도총관 · 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왕실과 인척관계가 있으므로 항상 언행에 조심하여 60년 동안 궁궐에 출입하였어도 집안사람들에게 궁궐 안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궐 일을 관장하게 되자, 더욱 근신하여 영비(營費)를 추호도 낭비하지 않고 봉직에 전력을 다하였다. 1826년 노령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승진하였다가, 서만수(徐萬修)의 무고를 받아 외진 고을에 유폐된 지 수년 만에 별세하였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매산집(梅山集)』

주석

  • 주1

    : 생원 급제 : 『숭정3갑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甲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44])

  • 주2

    : 총융사 임명 : 『순조실록』 14권, 1811년(순조 11) 5월 13일. "평안 병사 이해우를 유임하고, 이당·김기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주3

    : 시호 효헌 추증 : 『고종실록』 13권, 1876년(고종 13) 11월 27일. "여성 부원군 민치록 등에게 시호를 주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