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35년 사관(史官)이 되어 사초(史草: 時政을 기록한 初稿)의 작성에 종사하였으며, 1741년 홍상한(洪象漢)을 대신하여 관동어사로 파견되었다. 곧 지평(持平) · 장령(掌令)을 거쳐, 1743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응교(應敎)로서 궁중에서 사용할 가인례(家人禮)에 대해 진술하였다.
1746년 경상도심리사(慶尙道審理使)를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1748년 형조참의로 있으면서 참핵사(參覈使)로 봉황성(鳳凰城)에 가서 압수한 것을 영수하는 것과 잃어버린 은(銀)에 대한 두 안건을 추고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와 예조참판이 되었다.
1750년에 형조참판을 지냈다. 그 해에 어염세를 균등히 하기 위하여 6도에 삼사(三使)를 파견할 때 경기 · 황해 두 도의 균세사(均稅使)로 나가 민정을 살폈다. 풍모와 지기가 뛰어났고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이계집(耳溪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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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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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참핵사 활동 : 『영조실록』 68권, 1748년(영조 24) 11월 14일. "참핵사 김상적이 이윤방의 잃어버린 은자에 대해 단지 사리로서 깨우칠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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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균세사 활동 : 『영조실록』 72권, 1750년(영조 26) 10월 8일. "비변사가 갑자기 죽은 균세사 김상적의 일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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