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사인 · 집의 · 보덕 · 사간을 거쳐, 1651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장악원정(掌樂院正) 재임시에 권우는 묘악(廟樂)을 정리하도록 지시하여 음률의 체제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1654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경상도의 속오급보법(束伍給保法)을 정하도록 요청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 1657년부터 1659년까지 대사간 · 전라도관찰사 · 함경도병마절도사 · 함경도관찰사 등 외관을 지내면서, 지방 민정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노력하였다. 즉,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낼 때는 북로소복책(北路蘇復策 : 북방 지역 재건 정책)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내관으로 들어와 예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에 도승지 · 강화유수가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68년에 부호군(副護軍), 1671년에 판결사(判決事), 이듬해 한성부좌윤을 거쳐 1674년 사은사 김수항(金壽恒)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5년(숙종 1) 7월 서울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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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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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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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장악원 재직 : 『효종실록』 7권, 1651년(효종 2) 9월 16일. "태묘 악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묘실에 악장을 설치할 것을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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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북방 재건 정책 건의 : 『현종실록』 3권, 1660년(현종 1) 9월 24일. "북병사 권우가 북로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새로 출신한 부방자에 대해 적절히 조처해 줄 것을 치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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