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북부주부, 진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 음보(蔭補)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봉사(奉事)와 직장(直長)을 역임한 뒤, 1616년 평구도찰방(平丘道察訪)이 되었다가, 광해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학문연구와 저술에 힘썼다.
1623년 인조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북부주부(北部主簿)가 되었고, 얼마 후 진천현감으로 전임되었는데, 재임 기간에 선치와 교화에 힘쓴 공로로 인조가 『동의보감』 한 질을 하사하였다.
원래 관직에 뜻이 없어 벼슬을 사양하고, 옛 집인 밀양에 돌아가서 손기양(孫起陽)과 도의교(道義交)를 맺고 학문을 강론해 지방 선비들이 종장(宗匠)으로 추앙하였다. 그 뒤 고향인 경주로 가서 학문에 더욱 정진하였다. 밀양과 경주에서 『여씨향약』을 본떠서 실정에 맞는 향약을 만들어 풍속 순화에 힘썼다. 만년에는 형강(兄江)에 정자를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의 저서는 안동권씨의 세고인 『두고세고(杜皐世稿)』에 합편되어 있다. 또한 진천현감으로 있을 때, 광해군의 폭정과 역륜을 탄핵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동기가 되었던 당시 상소문 유초(遺草)가 있다.
참고문헌
- 『두고세고(杜皐世稿)』
- 『임진회맹록(壬辰會盟錄)』
-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8]).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8]).
-
주2
: 진사 급제 :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8]).
-
주3
: 두고세고 : 『두고세고(杜皐世稿)』(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K4-8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