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개령현감, 금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먼저 군사를 이끌고 전주에 도착하였으나, 관찰사가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거느리고 있던 군사를 빼앗아 방어 · 조방양진(防禦助防兩陣)에 이속시키고 군량관리의 임무를 맡게 하였다.
6월 20일 왜적이 금산군에 이르자 그곳으로 돌아가 2백명도 못되는 병졸을 거느리고, 약간의 역졸을 거느리고 있던 제원찰방(濟源察訪) 이극경(李克絅)과 합세하여 적을 기다렸다.
한편,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 조헌(趙憲)에게도 격문을 보내어 협력하여 방어할 것을 제의하였다. 22일 왜적이 대거 내습하자 하루종일 대전하였으며, 다음날 격전 끝에 아들 권준(權晙)과 함께 순국하였다.
며칠 뒤 고경명 · 조헌도 순국하였다. 군민들이 충의에 감복하여 시신을 거두어 포천의 선영에 장사지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금산에 순의비(殉義碑)가 세워졌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숙종실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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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 속고8, 권종 시장(諡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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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시호 충민 추증 : 『숙종실록』 50권, 1711년(숙종 37) 6월 16일. "한배주·권이진·송택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윤황·윤형 등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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