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6년 수원부사가 되고, 이어 함경도관찰사 ·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621년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지고, 우참찬을 거쳐 1622년 병조판서가 되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대신고관이 모두 도망쳤을 때, 김류(金瑬) · 홍서봉(洪瑞鳳) 등의 추천을 받고 홀로 제위(諸衛)의 군사를 모아 궁궐을 호위하여 공을 세웠으나, 유능함을 질시한 반정공신들로부터 계축옥사 때 형방승지로 김제남을 곤욕시켰다는 무고를 받고 양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경상도관찰사 민성휘(閔聖徽)에 의해 왜인과 내통하여 반란을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참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언(記言)』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권진의 삭직 : 『인조실록』 2권, 1623년(인조 1) 5월 6일. "사간원이 위리 안치를 청한 권진을 삭직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