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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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상락군(上洛君)
  • 수은(睡隱)
  • 운경(雲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24년(인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판서
  • 출생 연도1572년(선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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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찬성사 권근(權近)의 8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권종(權悰)이고, 아버지는 공릉참봉(恭陵參奉) 권현(權晛)이며, 어머니는 의금부도사 이희삼(李希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 수찬(修撰) · 형조정랑 · 장령(掌令) · 교리(校理) · 사간 ·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을 거쳐, 1609년(광해군 1) 경주부윤에 승진되었다. 1613년 승지로서 계축옥사에 연루된 인목대비의 동생이며 김제남(金悌男)의 아들인 김선(金瑄)의 감형을 청하였다.

1616년 수원부사가 되고, 이어 함경도관찰사 ·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621년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지고, 우참찬을 거쳐 1622년 병조판서가 되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대신고관이 모두 도망쳤을 때, 김류(金瑬) · 홍서봉(洪瑞鳳) 등의 추천을 받고 홀로 제위(諸衛)의 군사를 모아 궁궐을 호위하여 공을 세웠으나, 유능함을 질시한 반정공신들로부터 계축옥사 때 형방승지로 김제남을 곤욕시켰다는 무고를 받고 양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경상도관찰사 민성휘(閔聖徽)에 의해 왜인과 내통하여 반란을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참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기언(記言)』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권진의 삭직 : 『인조실록』 2권, 1623년(인조 1) 5월 6일. "사간원이 위리 안치를 청한 권진을 삭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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