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47년(명종 2)까지 병조좌랑 · 이조좌랑 · 이조정랑 · 병조정랑 · 형조정랑 · 직강(直講) · 교리(校理) · 지평(持平) · 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550년에 승문원판교를 거쳐 승정원동부승지에 승진하였으며, 2년 뒤에는 도승지가 되었고, 1556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호남의 신중(新中)에 왜구가 침범하자 관찰사 겸 도순찰사가 되어 변경을 평정하였다. 1558년 명나라의 책세자사신(冊世子使臣)이 올 때 원접사가 되었으며, 이어 우찬성을 역임하고, 1566년에는 영의정 윤원형(尹元衡)이 죄를 얻어 물러나자 우의정이 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에는 좌의정, 1571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작은 관직에 있을 때부터 몸가짐이 신중하여 일찍부터 재상의 중망(衆望)이 있었다고 하며, 비록 출중한 재기는 없었으나 청신하게 법을 지켜 감히 허물하지 못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복상(福相)이라고 칭송하였다. 시호는 강정(康定)이다.
참고문헌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계곡집(谿谷集)』
- 『동주집(東州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명종실록(明宗實錄)』
- 『가정7년무자2월24일생원진사방목(嘉靖七年戊子二月二十四日生員進士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7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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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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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사 급제 : 『가정7년무자2월24일생원진사방목(嘉靖七年戊子二月二十四日生員進士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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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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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강정의 근거 : 『고종실록』 41권, 1901년(고종 38) 11월 13일. "김병익 등이 권익경에게 시호를 추서할 것을 건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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