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향교 ()

강릉향교
강릉향교
유적
국가유산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
이칭
이칭
강릉문묘(江陵文廟)
유적
건립 시기
1313년(고려 충선왕 5)
관련 단체
향교재단 율곡의숙(栗谷義塾), 강릉유도회(江陵儒道會), 명륜교육원(明倫敎育院), 충효교육원(忠孝敎育院)
관련 인물
김승인(金承印), 이맹상(李孟常), 김지(金輊), 최치운(崔致雲), 곽거완(郭居完) 등
면적
836.33㎡
소재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륜로 29(교동 233)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강릉향교(江陵鄕校)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지정기관
강원특별자치도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5년 01월 17일 지정)
소재지
강원 강릉시 명륜로 29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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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강릉향교는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이다. 1411년 화재로 향교가 소실되자, 2년 뒤 강릉대도호부 판관 이맹상과 최치운을 비롯한 강릉 유생 68명이 건의하여 중건되었다.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정의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
건립 경위

고려 예종 때 강릉 남대천 남쪽 광정리에 내외향교(內外鄕校)가 있었으나 소실되자, 1313년(충선왕 5) 강원도안렴사(江陵道按廉使) 김승인(金承印)이 화부산 연적암(硯滴巖) 아래에 항교를 설립하였다. 1411년 화재로 다시 불타 버리자 강릉대도호부 판관(判官) 이맹상(李孟常)과 강릉 유생 68인이 발의하여 1413년에 중건하였다.

변천

1623년(인조 원년)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을 비롯한 향교 전반에 대한 중수가 있었으며, 1738년(영조 14) 정양재(正養齋)를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번 중수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09년 향교 재정으로 신식 학교인 화산학교(花山學校)를 설립 · 운영하다가 1910년 폐교되었고, 1928년 개교한 강릉공립농업학교를 비롯하여 강릉 시내에 설립된 학교들 대부분은 교사가 완공되기 전 명륜당을 교사로 활용하면서 개교하였다.

대성전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또 명륜당과 동무(東廡) · 서무(西廡) · 전랑(前廊)은 2020년 12월 2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국가문화유산 외의 건물과 구역은 1985년 1월 17일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형태

강릉향교는 화부산 아래 경사진 곳에 정남향으로 위치하며, 위쪽에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 아래쪽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하여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10철 및 송조 6현의 위패가, 동무와 서무에는 중국 97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2층 누대 형식으로 아래층은 원형의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았으며, 위층에는 마루 바닥의 강당과 직실(直室)이 있다.

특성

1614년(광해군 6) 강릉부사 정경세는 동성동본 혼인 금지, 상제례 간소화 등을 위해 「통유문급절목(通諭文及節目)」을 시행하였고, 1622년(광해군 14) 원장 이상혐 등은 절목의 철저한 시행을 위해 친속상간한 자는 관에 알리고 군역에 종사하게 할 것, 내외자손 중 난간(亂奸)한 소생은 과거 응시를 불허할 것 등의 금문(禁文)을 발표하였다.

1791년(정조 15) 조정은 해폐(海弊) 해소 방안으로 강릉향교 석전제의 제수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근거하여 건어[어숙(魚鱐)]를 70% 줄이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강릉 유생들은 지역적 특성과 『국조오례의』에 제수의 수량이 정해지지 않은 점 등을 주장하면서 관찰사에게 항의하는 한편, 경향 유림들에게 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통문을 돌렸다. 또한 체포된 주동자를 탈취하여 향교에 숨기고, 상경 상소를 추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상경 유생들을 검거하여 강원도 감영으로 압송하였고, 강릉에 파견된 안핵어사(按覈御史)의 조사에 따라 주도 유생들은 유배되었으며, 신문 중 유생이 사망하는 사태에 이르고, 강릉부사 이집두도 속전의 처벌을 받았다.

또 하남재(河南齋)의 서원화 추진 시비, 오봉서원(五峯書院) 우암(尤庵) 영정 추배 시비 등 향론의 분열이 발생할 때마다 재회를 통해 조정하였으며, 19세기에는 신 · 구유 간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신구유통행절목(新舊儒通行節目)」과 「향교전답이정절목(鄕校田畓釐正節目)」 등을 시행하였다.

현재 매년 봄 · 가을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하고 있으며, 강릉 시민을 대상으로 한문 강독, 전통문화 특강 등을 진행하고 있다. 향교 조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 그리고 향교의 행정 및 재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약간명을 두고 있다. 소장 전적은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공자의 행적을 도해한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 등 70여 권만 남아 있다.

의의 및 평가

강릉향교는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일성록(日省錄)』
『虛白亭文集』 卷2, 「江陵鄕校重修記」

단행본

『강릉향교칠백년사』(강릉향교칠백년사지편찬위원회, 2013)
『향교석전: 강릉향교·인천향교』(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강원총람』(강원도, 1975)

논문

임호민, 「조선후기 강릉지방 서원 건립과 운영에 따른 향전」(『지방사와 지방문화』 24-1, 역사문화학회, 2021)
안세현, 「조선후기 향교의 지역성: 정조 연간 강릉향교의 석전제 祭需 사건을 중심으로」(『한문고전연구』 36, 한국한문고전학회, 2018)
임호민, 「조선후기 강릉지방재지사족의 향촌활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학위 논문, 2004)
집필자
임호민(가톨릭관동대 조교수, 조선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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