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춘천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불상은 하나의 광배에 삼존상을 배치한 일광배삼존불(一光背三尊佛)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불신·광배·대좌가 한데 붙은 일주조품(一鑄造品)이다.
본존인 보살상은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을 취하였다. 머리에는 삼면관(三面冠)을 썼으며, 양쪽 관에서 내려진 장식이 두 어깨까지 내려져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고, 눈·코·입은 선각(線刻)으로 표현되었으나 정교하지 않다.
가슴에는 대각선으로 걸쳐 입은 내의가 보인다. 천의(天衣)는 불상의 앞면에서 늘어졌다가 교차되어 다시 양어깨에 올려져 있고, 그것이 다시 지느러미같이 좌우로 늘어져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裙衣)는 길게 늘어져서 약간의 주름이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를 깎고 합장한 채 서 있는 협시(脇侍)의 나한상은 두꺼운 법의를 입고 있는 세부 묘사나 늘어진 주름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다. 광배는 가장자리에 테를 두른 주형(舟形)으로 되어 있으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세 줄의 음각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두광 안에는 보살의 머리 둘레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두광과 신광의 바깥쪽에는 불꽃무늬[火焰紋]가 음각되었다. 그 모양은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1962년 지정)의 광배 무늬와 닮았으며, 그보다 연대가 앞서는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국보,, 1964년 지정) 광배에서 보이는 형상에 비하여 더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대좌는 사발을 엎어 놓은 듯한 반구형으로 위쪽에는 약간 높인 둥근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있고, 그 위에 본존이 서 있다. 아래쪽에는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선각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대좌와 선각의 연화무늬는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금동 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과 흡사하나, 보다 세련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이 보살삼존상의 양식은 중국의 북위시대(北魏時代) 불상 가운데 6세기 초의 불상과 연결되고, X자형으로 교차된 천의와 좌우로 지느러미처럼 내린 천의 자락, 보관의 형태 등에서 공통 요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불상은 대체로 북위 양식에 비하여 옷주름이나 세부의 표현이 많이 간략화되고 기법이 둔화되었으며, 전체적으로는 강직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보살삼존상의 본존보살상과 비교가 되는 예로는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금동보살입상(부여 규암면 신리 출토)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삼존 형식의 불상은 현존하는 불상 가운데 삼국시대의 6세기경 불상에서 많이 보이나, 본존이 보살상이고 협시가 나한상인 경우는 이 불상 이외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보살삼존입상도 6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나, 삼국 중 어느 나라의 불상인지는 확실히 단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