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불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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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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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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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높이 33.6cm, 넓이 12cm, 대좌 높이 13.7cm, 넓이 18.2cm. 미국 샌프란시스코동양미술박물관 소장. 넓은 가슴과 입체감이 있는 몸체 표현에 신체 비례가 어울리는 당당한 자세의 금동여래입상으로 통일신라시대 8세기의 상으로 생각된다. 비교적 통통하고 넓은 얼굴에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다.

작고 납작한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로 머리가 표현되었다. 중앙에 널찍하게 머리의 윤곽과 큰 구별이 없이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얹혀 있다.

이마의 중앙에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있다. 내리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작은 입은 얼굴 표정을 엄숙하게 보이게 한다.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귓불에 구멍이 뚫려 있다.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는 가슴을 많이 드러내었다. 그 속에 엄액의(掩腋衣 : 大衣 안에 윗內衣로 입던 옷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걸쳐 입는다)를 입고 있다.

옷주름의 처리 방식은, 굴곡진 신체의 윤곽을 따라 몸에 밀착되어 표현되어 신체의 입체감이 강조되었으며 8세기 신라 조각의 특징 있는 조형성을 느낄 수 있다. 양쪽 무릎 아래로 늘어진 불의(佛衣)는 두 다리 위로 각각 연속적인 U형의 주름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경주 감산사(甘山寺) 절터에서 출토된 아미타여래상에 보이는(720년명) 주름 형식에서 발달되면서 변형된 것이다. 굵은 옷주름 밑으로 낮게 융기된 짧은 파상(波狀 : 물결무늬)형의 주름이 따라오는 표현은 이른바 번파식(飜派式) 옷주름이라고 부르며 옷의 양감을 강조한다.

두 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의 위치에 있으나 약간 파손되었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화 대좌는 불상과 별도로 주조되었다.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넓은 받침대는 상을 안정감 있게 받쳐 주고 있다. 그 밑으로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연화와 안상(眼象)이 투각(透刻 : 뚫새김)된 8각 기단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유형의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불입상 형식 중의 하나로 7세기 후반의 중국 당대 불상을 기초로 하여 신라에서는 8세기에 유행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변형을 이루면서 9세기까지 유행되었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형식의 불상이 8세기 후반 9세기에 유행된다.

이 불입상의 묵직하고 통통한 몸체나,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옷주름 처리, 위엄 있는 상의 자세와 얼굴 표정 등은 신라적인 불상 표현으로 발달되어 가는 양식 발전에서 전성기에 해당되며 8세기 중엽 내지 후반의 제작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Rene·Yvon Lefebvre d'Argence, editor in Charge. Chinese, Korean and JapanesaeSculpture in the Avery Brundage Collection(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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