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대목리에 있는 절터에서 출토된 4점의 동판불로서 가장 큰 것은 세로 7.7㎝, 가로 7.1㎝ 크기의 동판에 얕은 부조로 삼존불좌상을 새겼다.
중앙에 본존불이 있고 그 좌우에 두 보살이 본존을 향해 몸을 틀고 앉아 꽃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아래에는 연꽃대좌, 위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장막형의 천개(天蓋)가 있다.
본존의 얼굴은 알맞게 부푼 원만형으로서 이런 얼굴의 형태는 우리 나라에서는 초당양식(初唐樣式)을 받아들인 뒤의 작품으로서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의 본존 얼굴과 친연성이 강하다.
두 손을 덮으며 흘러내린 대의(大衣)의 착의법이나 장막형의 천개, 본존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보살상의 모습 등은 650년을 전후한 신인사사방불과 특히 유사하다.
세로 6.5㎝, 가로 6.4㎝ 크기의 동판에 조각된 반가사유삼존상은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두 나한이 협시(脇侍)하고 있는 형식이다.
얼굴이나 벗은 상체의 모습은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반가상과 유사하며 목걸이 · 상현좌 · 보관 · 광배 등도 닮아 있어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반가상 양식이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릎의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의문(衣文 : 옷자락 무늬)은 경주남산삼화령미륵삼존불상과 비슷하다.
세로 5.9㎝, 가로 3.5㎝ 크기의 동판에 4구의 불상을 주조한 것은 모두 감실 속에 선정하고 있는 부처님을 도상화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가로 8.0㎝, 세로 5.0㎝ 크기의 동판에 한 줄에 7구씩 합계 14구의 상을 부조한 것인데, 머리가 감실(龕室)에 가려져 있어 불상인지 비구상인지 식별하기 곤란하지만 아마도 나한상인 듯하다.
이 네 개의 동판불상들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보다 큰 판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제작 시기는 출토지와 불상의 양식으로 볼 때 7세기경의 백제 불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