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내용
불신 · 광배 · 대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불상은 불신과 대좌의 높이 비율이 3:1이고, 등신대의 불신에 적당한 광배로 전체적인 구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균형을 이룬 구도는 형태에서도 잘 나타나 머리와 불신의 높이 비율이 1:4로, 굴불사지석불상의 아미타상과 함께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인 것이다.
비록 정면에서 보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강건한 풍모의 석불입상이지만 부풀고 풍만한 얼굴에 눈 · 코 · 입은 세련되게 표현되어,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사암불입상(砂巖佛立像) 같은 이국적인 과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즉, 신라의 토속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떡 벌어진 가슴과 팽팽한 어깨, 당당하게 버티고 선 위엄 있는 자세 등은 감각적인 사실주의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얼굴이나 신체의 묘사에서 자비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부처님의 위엄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를 등지고 있는 이 불상은 당당하고 위엄 넘치며,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감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다. 하지만 신체 각 부분의 탄력적인 모습과 함께 박진감이 넘치는 표현은 인체를 이상적인 불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불상은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를 전신으로 걸치고 U자형의 주름이 상체에 유려하게 흐르다가 다시 양쪽 다리로 각각 내려가서 옷주름을 이루고 있다. 두 다리의 U자형 옷주름과 함께 목의 옷깃을 한 번 뒤집는 반전수법(反轉手法)은 전형적인 우드야나(udyana, 優塡王像)식 착의법이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신라 불상에서는 이 불상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 불의는 약간 두꺼우면서 악센트를 강하게 넣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불상 형태와 함께 불상 자체도 박진감 나도록 하는 요인이 된다.
불상 광배 뒷면에 새긴 21행 391자의 불상 조성기는 이 불상이 법상종 사찰의 강당에 모시던 아미타불임을 밝히고 있어 금당주존(金堂主尊) 미륵보살과 함께 당대 법상종의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완성된 이상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뿐만 아니라 명문에 의해 조성 연대와 발원자가 분명히 밝혀진 불상으로서 우리나라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80)
- 「감산사 아미타불상과 미륵보살상 조상의 경전적 배경」(김영미, 『한국사상학』50, 한국사상사학회, 2015)
- 「統一新羅 佛敎彫刻과 唐代 畵風: 甘山寺 阿彌陀佛立像과 彌勒菩薩立像을 中心으로」(소현숙, 『한국미논단』38, 한국미술연구소, 2014)
- 「신라법상종(유가종)의 성립문제와 그 미술: 감산사 미륵보살 및 아미타불상과 그 명문을 중심으로」(문명대, 『역사학보』 62·63, 역사학회, 1974)
- 「新羅甘山寺如來式佛像の衣紋と日本佛像との關係」 (金理那, 『佛敎藝術』 110, 東京: 每日新聞社, 197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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