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존 아미타삼존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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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유물
조선 전기의 금동아미타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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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금동아미타삼존불.
내용

불상 전체 높이 40.6cm, 전체 넓이 54.6cm.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중앙에 아미타불, 오른쪽 협시에 지장보살, 왼쪽협시에 관음보살로 구성된 아미타 금동삼존불이다.

삼존상의 대좌는 세 줄기에서 뻗어 나온 연꽃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영탑사(靈塔寺) 소장 금동삼존불상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불상 중에 비슷한 예가 몇 알려져 있다.

부처와 두 보살상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 형식이 서로 비슷하여 오른쪽 어깨 일부를 반달 모양으로 덮은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를 표현하였다.

대의의 옷깃이 목 뒤에서 한 번 접혀서 왼쪽 어깨 위로 넘어오는 표현은 고려 말기 이후 조선 전기 불·보살상들의 표현에 자주 나타난다. 군의(裙衣)의 상단이 가슴 높이에서 직선으로 보이고 그 밑에 허리띠가 매어졌다.

본존불상의 머리에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구분이 강조되지 않은 점이나 그 끝이 뾰족하고 보주를 얹혀 놓은 점 역시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 전기 불상에 유행하는 특징이다.

보살상들은 대칭으로 두 상 모두 바깥쪽 다리를 접어 대좌에 올리고 나머지 안쪽 다리를 밑으로 내려 뻗은 유희좌(遊戱座)의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무위사(無爲寺)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상(1476년 추정)의 지장(地藏) 및 관음(觀音)의 협시보살상들은 서로 바깥쪽 다리를 내리고 있으나 두 상이 서로 대칭으로 표현된 점은 공통이다.

지장보살은 민머리이며 오른손에 보주를 받들고 있고 왼손도 배 앞에서 무엇인가를 받쳐 든 모습이다. 왼쪽 협시인 관음보살은 높은 원통처럼 생긴 보관을 썼고 그 중앙에는 화불(化佛)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어 놓고 왼손은 몸 뒤로 돌려 대좌 위에 기대고 있다.

보살상들의 가슴에 작게 매달린 목걸이의 형태도 무위사 아미타삼존불상의 보살상들의 목걸이와 거의 비슷하다. 고려 말 조선 초기 불상들의 화려한 목걸이 장식에 비해서 매우 간단해졌으며 무릎 부분의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들 역시 조선 초기 상들의 장식 전통을 따르고 있다. 연꽃대좌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들은 고려 불화의 표현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가 된 아미타삼존의 구성은 고려 말 불화에 많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 초기 불상에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1429년 향로봉 출토 금동아미타삼존불상, 무위사 아미타삼존, 무량사 아미타삼존 등 참조). 상의 뒷면에는 세로로 반듯한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으며 원래 이곳에 복장 유물을 넣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좌 형식과 불의 표현에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표현을 따르며, 아직 단순화와 양식화가 많이 진전되기 이전의 비교적 사실적인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러 무위사 불상들과 같은 조선 전기 불상 양식과 유사하면서 부분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요소들로 보아 조선시대 15, 6세기의 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미국소장 한국문화재』 2-해외소장 5(한국국제교류재단, 1996)
집필자
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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