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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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 소속의 정3품의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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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 소속의 정3품의 관직.

내용

이들 양영은 보병과 기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사별장(騎士別將) 밑에 3인의 기사장을 두어 각각 기사 150인을 지휘, 감독하도록 하였다.

지방 각 진의 영장(營將) 이상으로 임명되었으며 교대연한은 1년이었다. 특히, 금위영의 경우 설치 초기에는 없었으나 기병부대인 별효위(別驍衛)가 향기사(鄕騎士)로 개편된 1746년(영조 22) 전에 별효위를 관장하던 좌부의 초관(哨官)을 금군장(禁軍將)의 예에 의하여 기사장으로 개칭, 승격시키는 동시에 그 수를 5인에서 4인으로 줄이고 내외장(內外將)을 거친 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뒤에 다시 향기사를 경기사(京騎士)로 대체하면서 어영청과 같이 3인으로 줄였다.

참고문헌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조선시대군제연구(朝鮮時代軍制硏究)』(차문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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