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원나라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奇皇后)의 족제(族弟)이다.
기황후의 세력을 믿고 불법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전토(田土)를 함부로 빼앗다가 1347년 정치도감(整治都監)에 의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갇혀 옥사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충주판관(前忠州判官) 최순보(崔純寶)의 고소와 기삼만 아내의 호소로 정치도감의 관원인 좌랑 서호(徐浩), 교감(校勘) 전녹생(田祿生)이 정동행성이문소(征東行省理問所)에 잡혀갔다가 왕명에 의하여 곧 풀려나는 등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