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태고(太古).
어려서는 글씨를 잘 쓰고 글을 잘하였으나, 장년이 되어서 무인이 되었다. 1194년(명종 24) 12월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97년 9월에 참지정사 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 같은 해 11월에 수사도 중서시랑 평장사감수국사 판병부사 태자태부(守司徒中書侍郎平章事監修國史判兵部事太子太傅)가 되었다. 1199년(신종 2) 12월에 수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守太尉門下侍郎平章事), 1200년 12월에 수태사 주국(守太師柱國), 1201년 12월에 문하시랑 동중서문하 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로 물러났다.
1199년 5월에 『대관전무일편(大觀殿無逸篇)』을 고쳐 썼으며, 1204년 정월에 최충헌(崔忠獻) 등과 더불어 신종의 희종에게의 선위(禪位)를 논의하였고, 희종 때 이부(吏部)에서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맡았으나, 최충헌에게 사양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음악과 글씨를 즐겼다. 시호는 경의(景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