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우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재판소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9년 나주목사로 재직중 9월에 전라도 광양현(光陽縣)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관청을 파괴하고 관장을 몰아낸 뒤 공금을 탈취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9월 17일 안핵사(按覈使)로 임명되어 10월 14일 민란주동자 정홍기(鄭洪基) · 박상룡(朴尙龍) 등을 잡아 효수하였다.
1893년에는 병조참판, 1894년에는 한성부우윤, 1895년 지방관제개혁 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관찰사 겸 충주부재판소판사에 임명되었다. 1896년 2월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義陣)이 충주성을 함락하고 성안으로 들어오자, 남문으로 피신하던 중 중군 종사 오명춘(吳命春)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고종시대사』(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1970)
- 『독립운동사자료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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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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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안핵사 활동 : 『고종실록』 26권, 1889년(고종 26) 10월 30일. "안핵사 김규식이 광양현의 소란에 죄인 정홍기와 박상룡을 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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