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3년(연산군 9)에 사헌부장령을 지낸 뒤 다음 해 홍귀달(洪貴達)의 유배 사건에 연루되어 서천에 유배되었다가 곧 방환되었다. 1509년(중종 4) 경차관(敬差官)으로 경상도 삼포(三浦)의 왜인들을 추고(推考), 단속하였고, 1512년 우부승지 · 좌승지를 거쳐 1515년 홍문관부제학, 대사간이 되었다.
1516년 판결사(判決事) · 충청도관찰사 · 병조참의를 지내고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김안로(金安老)의 일파로 승지가 되었다. 이후 이조참판 · 형조참판을 거쳐 1525년 동지돈녕부사로 있으면서 하정사(賀正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고, 다음 해 황해도관찰사 · 동지중추부사 · 한성부우윤 · 대사헌 · 공조참판 · 한성판윤을 지냈다.
1531년 병조판서 · 이조판서 · 판의금부사를 지냈다. 1533년 우의정이 되고 다시 좌의정 겸 세자사부가 되었으며, 1535년 영의정에 올랐다. 1537년에 대간으로부터 김안로의 일파로 탄핵을 받고 김안로가 실각되면서 파직당하여, 하동(河東)으로 유배되었다가 1539년에 배소에서 죽었다.
관직은 매우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하였으나, 김안로와 정치적인 운명을 함께 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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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감시생원진사방【성종대왕17년병오】(監試生員進士榜【成宗大王十七年丙午】)』(『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 續下, 金馹孫, 국립중앙도서관[한古朝57-가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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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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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근사의 상소 : 『중종실록』 7권, 1509년(중종 4) 1월 5일. "웅천 사람이 왜적에게 피살된 일·함경도 군보의 이설 문제를 의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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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유배지에서 병사 : 『중종실록』 91권, 1539년(중종 34) 7월 10일. "김근사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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