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기와 민족항일기초에 활약하였다.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유정리 출신으로 학식이 있는 선비였으나 천성적으로 신명을 좋아하여 농악에 뜻을 두고 박만풍으로부터 농악을 배워 유명한 상쇠가 되었다.
쇠가락이나 상모놀음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였으나 목청이 좋아 소리를 잘했고 춤을 잘 추었는데, 특히 판굿을 잘 추었다. 진(陣)풀이에서는 그를 따를 상쇠가 없었다 한다. 유식한 그는 당시 전승되던 호남우도농악(湖南右道農樂) 판굿을 토대로 하여 여러가지 진법(陣法)을 편성하여 판굿의 구성을 다채롭게 하였다 한다.
오늘날 호남우도농악에 남아 있는 여러가지 진풀이 가운데 한자로 명명된 진풀이는 그가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진풀이를 한자로 이름지은 것에는 점호진(點號陣) · 장사진(長巳陣) · 팔문둔갑진(八門遁甲陣) · 오행진(五行陣) · 육화진(六花陣) · 원앙진(鴛鴦陣) · 팔괘진(八卦陣) · 거문진 · 왕봉병사진 · 금쇄진과 같은 것이 있다.
그는 세칭 아흔아홉가지 진법을 써서 진을 짜는 데만도 하루이틀이 넘게 걸렸다고 전한다. 제자들은 그를 최고의 상쇠로 꼽으며 그의 진법놀이를 높게 평하나, 다른 상쇠의 제자들은 그를 가리켜 진법만 좋고 다른 것은 볼 것이 없다고 평한다.
칠십이 넘도록 상쇠로 있으면서 당시 전북 정읍농악을 세상에 널리 알렸으며, 이를 계기로 수많은 잡이꾼들이 나왔다. 그의 제자로 현판쇠(玄判釗) · 백남길(白南吉) · 이막동(李莫同) 등이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