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호부원외랑, 시랑, 좌승선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의종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으나 환관 정함(鄭函)을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으로 좌천되었다가 시랑에 옮겨졌다.
그 뒤 김부식이 세운 관란사(觀瀾寺)를 중수하여 아우인 김돈시(金敦時)와 함께 왕의 복을 비는 절로 삼음으로써 의종의 환심을 샀다.
1167년(의종 21) 좌승선(左承宣)이 되었는데, 의종이 봉은사(奉恩寺)에서 연등행사를 마치고 환궁할 때 김돈중의 말이 놀라 한 군사의 화살통에 부딪쳐 화살이 의종의 수레에 떨어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유시사건(流矢事件)으로 군인들이 죄없이 귀양가게 되어 김돈중에게 더욱 원한을 품게 되었다.
1170년 정중부가 보현원(普賢院)에서 난을 일으켜 많은 문신들이 살해당하자, 도망하여 감악산(紺嶽山)에 숨었으나 종자(從者)의 밀고로 잡혀 살해되었다. 김돈중은 죽으면서 유시의 화에 죄없는 사람이 많이 걸렸으니, 지금 나의 죽음은 마땅한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