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임(仲任)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549년(명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병휴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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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임(仲任). 할아버지는 김치세(金致世)이고, 아버지는 직제학 김천령(金千齡)이며, 어머니는 부수(副守) 김정(金丁)의 딸이다. 종숙인 지평 김인령(金引齡)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5년(중종 10) 진사가 되고, 152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사서를 거쳐, 1531년에 홍문관수찬이 되어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였으나, 도리어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沈貞)의 무리라고 탄핵당하여 삭직되었다.

그 뒤 1537년 김안로가 축출된 뒤 다시 서용되어 시독관 · 교리 · 홍문관부응교 · 사헌부장령 · 사간원사간 ·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543년에는 사은사, 그 이듬해에는 천추사로 파견되었고, 예조참판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재임 중 죽었다.

가문은 김천령 · 김만균 · 김경원(金慶元)의 3대가 모두 장원급제하였고, 둘째 아들 김명원(金明元)도 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당시에 문명을 떨쳤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수곡문집(壽谷文集)』

  •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김안로 탄핵 : 『중종실록』 71권, 1531년(중종 26) 10월 23일. "홍문관 부제학 등이 김안로의 일을 아뢰니 이미 체직하도록 했다고 전교하다"

  • 주3

    : 영의정 추증 : 『영조실록』 89권, 1757년(영조 33) 3월 26일. "친히 지은 대행 대왕 대비의 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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