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537년 김안로가 축출된 뒤 다시 서용되어 시독관 · 교리 · 홍문관부응교 · 사헌부장령 · 사간원사간 ·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543년에는 사은사, 그 이듬해에는 천추사로 파견되었고, 예조참판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재임 중 죽었다.
가문은 김천령 · 김만균 · 김경원(金慶元)의 3대가 모두 장원급제하였고, 둘째 아들 김명원(金明元)도 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당시에 문명을 떨쳤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수곡문집(壽谷文集)』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김안로 탄핵 : 『중종실록』 71권, 1531년(중종 26) 10월 23일. "홍문관 부제학 등이 김안로의 일을 아뢰니 이미 체직하도록 했다고 전교하다"
-
주3
: 영의정 추증 : 『영조실록』 89권, 1757년(영조 33) 3월 26일. "친히 지은 대행 대왕 대비의 행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