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강릉김씨 을축보(乙丑譜)'로 불리며, 현존하는 족보 중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1476), 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1562)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족보이다. 분량은 1책(99장), 판종은 목판본, 간행처는 전주의 풍월당(風月堂)이다. 현재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의 강릉김씨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다.
원래는 강릉김씨는 지정연간(至正年間:1341-1367) 이거인(李居仁)이 작성한 왕족도(王族圖)와 1476년(성종 7) 이신효(李愼孝)가 작성한 왕족도가 있었다. 이거인과 이신효는 강릉김씨의 외손들로서 둘 다 강릉부사 재임시에 왕족도를 작성한 것이다.
전자는 명주군왕(溟洲郡王) 김주원(金周元)의 세계를 중심으로 김씨 시조 김알지(金閼智)에서 고려말에 이르는 자손들의 세계를 정리하여 부사(府司)에 보관한 것이고, 후자는 이를 전사(轉寫)하여 역시 부사에 보관해 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종의 족도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현전하지 않는다.
을축보는 바로 이 왕족도의 연장 선상에서 편찬된 것으로 이 시기 다른 족보류와는 수록 형태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체제는 서문(序文), 범례(凡例), 강릉의 연혁, 보도(譜圖),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과 범례는 간행자 김첨경이 지은 것이고, 연혁은 본관지 강릉의 역대 연혁을 시기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부록은 고려사에 수록된 김인존(金仁存)의 본전, 수보현산고묘기(修普賢山古墓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족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안동권씨 성화보나 문화유씨 가정보 등과는 달리 본종(本宗)만 가록하고 외파(外派)는 기록하지 않았으며, 자녀도 출생순이 아닌 선남후녀(先男後女)의의 방식으로 수록된 점이다.
외손을 생략한 것은 부계중심 의식의 결과라 할 수 있으나 내외손이 무분별하게 수록된 왕족도류의 박잡함에서 벗어나 부계중심의 계통을 확립하고 열람의 편의성을 기하려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족보는 강릉김씨족보의 초간본으로서 1714년의 갑오보(甲午譜), 1743년의 계해보(癸亥譜), 1797년의 정사보(丁巳譜) 등 무려 13종에 달하는 강릉김씨 후간(後刊) 족보의 편찬의 전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