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김제군수, 상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사미(士美).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중종 32)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벼슬길에 올랐으며, 1545년 명종이 즉위한 뒤 윤원형(尹元衡) 일파가 국정을 장악하자 호조정랑으로 있었는데, 집안이 한미하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받고 개체(改遞: 교체됨)되었다.
그 뒤 1553년(명종 8)에는 김제군수로 나갔고, 이후 상주목사 등 외직을 전전하였다. 그러나 수령으로서 바른 정사를 펴서 서리와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높았으며, 특히 청렴결백하여 윤원형 일파가 제거된 뒤 명종이 문신들을 시험하면서 청백리를 추천하게 하였는데, 모두가 추대하였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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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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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탄핵으로 교체 : 『명종실록』 6권, 1547년(명종 2) 7월 24일. "사헌부의 건의로 호조 정랑 김자양·김명언을 체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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