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김제군수, 상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미(士美)
인물/전통 인물
  • 본관개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주목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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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김제군수, 상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사미(士美).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중종 32)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벼슬길에 올랐으며, 1545년 명종이 즉위한 뒤 윤원형(尹元衡) 일파가 국정을 장악하자 호조정랑으로 있었는데, 집안이 한미하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받고 개체(改遞: 교체됨)되었다.

그 뒤 1553년(명종 8)에는 김제군수로 나갔고, 이후 상주목사 등 외직을 전전하였다. 그러나 수령으로서 바른 정사를 펴서 서리와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높았으며, 특히 청렴결백하여 윤원형 일파가 제거된 뒤 명종이 문신들을 시험하면서 청백리를 추천하게 하였는데, 모두가 추대하였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탄핵으로 교체 : 『명종실록』 6권, 1547년(명종 2) 7월 24일. "사헌부의 건의로 호조 정랑 김자양·김명언을 체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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