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제용감첨정, 평양서윤, 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전적 때 관북지방에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삼남(三南)의 곡식을 조운할 마땅한 사람을 고르지 못할 때 낮은 관직으로 뽑혀 명성과 경륜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양서윤이었던 1523년 관서지방에 전염병이 만연하자, 둔전책(屯田策)을 건의하고 농업에 힘쓰고 민식(民食: 백성들을 위한 식량)과 창름(倉廩: 관곡을 쌓아두는 창고)을 넉넉히 하며 군졸에게 잡다한 세(稅)를 없애주어 백성의 주거를 편안하게 하였다.
그러나 뒤에 요승(妖僧) 학조(學祖)의 조카라 하여 탄핵을 받았고, 재물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서 당시 사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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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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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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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탄핵 내용 : 『중종실록』 26권, 1516년(중종 11) 9월 29일. "간원이 정언 김번은 서경을 받지 못했으니 체직하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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