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총리군국사무,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57년 예조판서, 1858년 병조 · 호조의 판서 등 안동김씨 세도의 물결을 타고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1860년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더불어 안동김씨 세도는 일단 후퇴하였으나, 그 이전부터 흥선대원군과 관계를 맺어왔던 김병국은 이조판서가 되었다.
1865년 경복궁 중건 때에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다. 1867년 정리사(整理使) · 판삼군부사(判三軍府使), 1874년 우의정이 되어 1876년 강화도조약에 대한 고종의 자문에 사태를 보아 정책을 강구하자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였다.
1878년 좌의정이 된 뒤, 1880년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에 따라 연미국론(聯美國論)을 주장, 미국과의 수교에 찬성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사태의 수습에 나선 흥선대원군이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혁파하고 삼군부(三軍府)를 설치함에 따라 영삼군부사(領三軍府事)가 되었다.
이어 호조판서 · 총리통리내무아문사무(總理統理內務衙門事務)를 거쳐 12월 총리군국사무(總理軍國事務)가 되었다. 1884년 영의정 세자사 총리군국사무(領議政世子師總理軍國事務)를 역임하고, 같은 해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다가 1885년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병국이 지은 「예릉지문악장(睿陵誌文樂章)」이 『예릉지장(睿陵誌狀)』에 수록되어 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매천야록(梅泉野錄)』(황현(黃玹))
- 『고종시대사』 1∼3(국사편찬위원회, 197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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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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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영건도감 제조 임명 : 『고종실록』 2권, 1865년(고종 2) 4월 3일. "영건 도감의 관리를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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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영의정 임명 : 『고종실록』 21권, 1884년(고종 21) 5월 22일. "김병국을 영의정으로 임명한 다음 군국사무를 총괄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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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고종실록』 45권, 1905년(고종 42) 2월 2일. "영의정 이준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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