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문학, 보덕,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시(仲施)
척재(惕齋)
시호
익헌(翼獻)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2년(현종 13)
사망 연도
1717년(숙종 43)
본관
광산(光山)
주요 관직
전라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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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문학, 보덕,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시(仲施), 호는 척재(惕齋). 의사(義士) 김익겸(金益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인의 거두인 김만기(金萬基)이고, 아버지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김진구(金鎭龜)이며, 어머니는 이광직(李光稷)의 딸이다. 김춘택(金春澤)의 동생으로, 숙종의 장인이다.

종제로는 1721년(경종 1) 신임사화 때 노론의 사대신의 일파로 지목되어 거제에 유배된 김복택(金福澤)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 등이 사사(賜死)되는 기사환국으로 집안이 크게 화를 입어, 아버지 김진구가 섬으로 정배되자 형 김춘택과 함께 섬에서 학문을 닦았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축출되고 송시열·김수항 등이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회복함)되는 등 서인이 집권하자, 이듬해인 169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노소 분쟁으로 등용되지 못하다가 5년 뒤에야 연원찰방(連原察訪)으로 관직에 나가 검열·정언(正言) 등 삼사(三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701년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처벌을 놓고 중형을 주장하는 노론과 가벼운 형을 주장하는 소론이 정면으로 대립할 때, 형 김춘택과 함께 소론의 영수인 남구만(南九萬)·최석정(崔錫鼎)을 호역죄(護逆罪: 반역을 옹호한 죄)로 탄핵했다.

그리고 역시 소론의 영수로서 스승인 송시열의 학문과 덕행의 부족함을 지적했던 윤증(尹拯)을 배사죄(背師罪: 스승을 배반한 죄)로 논핵하였다. 세자시강원의 문학(文學)·보덕(輔德) 등을 거쳐, 1715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노론의 선봉으로 성품이 강직했으며, 문장은 물론 글씨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죽헌집(竹軒集)』(김민택)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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