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돈서(惇敍). 호는 설월당(雪月堂). 아버지는 생원 김유(金綏)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주1, 1572년(선조 5) 유일(遺逸: 학식과 인품을 갖추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재를 천거하는 등용책)로 천거되어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85년에 전라도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부임하여 향교를 중수하고 봉급을 털어 서적 8백여 책을 구입하는 등 지방교육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또 학령(學令) 수십조를 만들어 학생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향병(鄕兵)을 도왔고, 봉화현감이 도망가자 가현감(假縣監)이 되어 선무에 힘썼다.
그리고 관찰사 김수(金晬)에게 적을 막는 3책(三策)을 올렸는데, 충심이 지극한 내용이었다. 김성일(金誠一) · 이발(李潑)과 도의를 강마하였으며,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설월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대학』과 『심경』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학에 대해서도 사우 간에 많은 질의가 있었다. 저서로는 『설월당집(雪月堂集)』 6권이 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