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익 ()

명현화상 중 김상익 초상
명현화상 중 김상익 초상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도승지, 지경연사, 강화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필(士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9년(숙종 25)
사망 연도
1771년(영조 47)
본관
강릉(江陵)
주요 관직
강화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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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지경연사, 강화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필(士弼). 김득원(金得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홍주(金弘柱)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시환(金始煥)이며, 어머니는 유정기(兪鼎基)의 딸이다.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의 사촌형이며, 동생은 예조판서 김상성(金尙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주1,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주2 1729년 지평(持平) · 정언(正言)이 되었다. 1732년 충청도어사를 거쳐 수찬(修撰) · 교리(校理) · 헌납(獻納) 등 청환직(淸宦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1735년 이조좌랑, 이듬해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을 거쳐 대사간에 오르고, 1738년에 승지, 1750년에 경기도관찰사 · 대사헌 등을 지냈다.

1757년에는 사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주3. 1759년 도승지, 1763년 지경연사(知經筵事), 1765년 강화유수를 거쳐 1767년 기로소에 들어가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는데, 형제숙질 가운데 기사(耆社: 기로소의 다른 이름)에 들어간 사람이 6인이나 되어 세상에서 복문(福門)이라 주4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주1

진사 급제 : 『신축성상즉위증광별시사마방목(辛丑聖上卽位增廣別試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B13KB-0020])

주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3

동지사 청나라행 : 『영조실록』 90권, 1757년(영조 33) 11월 3일. "동지 정사 이강 등을 인견하고, 관서의 은을 빌려가려는 것을 책망하다"

주4

가계 : 『영조실록』 116권, 1771년(영조 47) 1월 4일. "봉조하 김상익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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