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3년 3월에는 송명흠사건(宋明欽事件)으로 홍양한(洪良漢)과 함께 삭직되었다. 정언으로 있을 때 경현당(景賢堂)의 문신 제술에서 장원하여 문명을 떨쳤다. 1763년 경기도 · 강원도의 암행어사를 지냈는데, 강원도어사로 있을 때는 영남과 호남의 곡식을 옮겨다가 6읍의 백성을 진휼하기도 하였다.
1766년 부수찬(副修撰) · 교리(校理) · 헌납(獻納)을 역임하고, 1771년 필선(弼善) · 장령(掌令) · 수찬(修撰)을 거쳐 이듬해 이조참의 · 승지를 지냈으며, 1773년에 대사간에 올랐다. 1784년(정조 8) 이조판서로 사은 겸 진주부사(謝恩兼陳奏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 · 형조판서에 올랐다. 1787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서 화전(火田)이 늘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으로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한성부판윤을 거쳐 병조 · 공조 · 예조의 판서와 우참찬을 지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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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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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송명흠 사건으로 파직 : 『영조실록』 101권, 1763년(영조 39) 3월 10일. "홍양한·김상집·변득양 등을 삭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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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화전 문제로 파직 : 『정조실록』 24권, 1787년(정조 11) 12월 22일. "비변사에서 경상도의 송전의 실태를 보고하고 수령들의 추고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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