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능(士能)
인물/전통 인물
  • 본관강릉(江陵)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참찬
  • 출생 연도1723년(경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0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능(士能). 아버지는 김시석(金始錫)이며, 첨지중추부사 김시영(金始煐)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5년(영조 31)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을 거쳐 1761년 정언(正言)이 되고, 이듬해 김상숙(金相肅) · 유한길(兪漢吉) 등을 탄핵하였다.

1763년 3월에는 송명흠사건(宋明欽事件)으로 홍양한(洪良漢)과 함께 삭직되었다. 정언으로 있을 때 경현당(景賢堂)의 문신 제술에서 장원하여 문명을 떨쳤다. 1763년 경기도 · 강원도의 암행어사를 지냈는데, 강원도어사로 있을 때는 영남과 호남의 곡식을 옮겨다가 6읍의 백성을 진휼하기도 하였다.

1766년 부수찬(副修撰) · 교리(校理) · 헌납(獻納)을 역임하고, 1771년 필선(弼善) · 장령(掌令) · 수찬(修撰)을 거쳐 이듬해 이조참의 · 승지를 지냈으며, 1773년에 대사간에 올랐다. 1784년(정조 8) 이조판서로 사은 겸 진주부사(謝恩兼陳奏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 · 형조판서에 올랐다. 1787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서 화전(火田)이 늘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으로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한성부판윤을 거쳐 병조 · 공조 · 예조의 판서와 우참찬을 지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송명흠 사건으로 파직 : 『영조실록』 101권, 1763년(영조 39) 3월 10일. "홍양한·김상집·변득양 등을 삭직하다"

  • 주3

    : 화전 문제로 파직 : 『정조실록』 24권, 1787년(정조 11) 12월 22일. "비변사에서 경상도의 송전의 실태를 보고하고 수령들의 추고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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