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옥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생원이 된 후 벼슬을 지내지 않고 음률을 즐기며 은거하였으며,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이칭
  • 옥이(沃而)
인물/전통 인물
  • 본관부령(扶寧)
  • 사망 연도1535년(중종 3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77년(성종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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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생원이 된 후 벼슬을 지내지 않고 음률을 즐기며 은거하였으며,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개설

본관은 부령(扶寧). 자는 옥이(沃而). 아버지는 사도시첨정 김직손(金直孫)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로 감찰 윤등준(尹登峻)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3년 생원이 된 뒤, 더 이상의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1518년 형인 김석홍(金錫弘)이 유일(遺逸: 학식과 덕망이 높아 과거를 거치지 않고 높은 관직에 등용되는 선비)로 천거되자 형을 권하여 나아가게 하였다.

자신은 향리인 부안에 머무르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곧은 행실로 인망이 높아 김안국(金安國)이 ‘군자(君子)’라 하여 조정에 천거하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변산부근에 집을 짓고 거문고를 타고 음률을 즐기며 은거하였는데, 세상사람들이 신선의 풍모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고봉집(高峯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부안읍지(扶安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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