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량부리 ()

목차
고대사
지명
백제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지명.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백제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지명.
내용

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일원이다. 백제시대에 이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행정단위는 성(城)이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백제 고지(故地)에 1도독부(都督府)·7주(州)·51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을 때, 여기에 도독부 관할의 인덕현(麟德縣)을 두려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라에 병합된 뒤 고량부리현으로 웅천주(熊川州)임성군(任城郡)의 영현(領縣)에 편성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전국 군현의 명칭을 한식(漢式)으로 고칠 때 청무현(靑武縣)으로 개명되어 고량부리라는 지명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고려 초기부터 청양(靑陽)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군단인 십정(十停)의 하나인 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이 설치되어 대대감(隊大監)·소감(小監)·대척(大尺)·삼천당주(三千幢主)·삼천감(三千監) 등의 군관과 기병부대가 상주하며 웅주 관내의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