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계장(季章)
시호
효헌(孝獻)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1년(숙종 7)
사망 연도
1750년(영조 26)
본관
강릉(江陵)
주요 관직
병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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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계장(季章). 김선여(金善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득원(金得元)이고, 아버지는 봉사(奉事) 김홍주(金弘柱)이며, 어머니는 주서(注書) 남궁배(南宮培)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0년(숙종 36)에 진사가 주1. 1713년(숙종 39) 성균관생으로서 김장생(金長生)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위해 권당(捲堂: 불만이나 불평으로 모두 성균관을 나가 관을 비움)을 주동하였다 하여 정거(停擧: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주2

1717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주3 1722년(경종 2)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서 문학(文學) · 지평(持平)을 거쳐, 1727년(영조 3)에 다시 정언이 된 뒤 헌납(獻納)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 호서 · 호남지방의 안무사 겸 순찰어사가 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소란해진 이 지역의 민심수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730년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이어서 참찬관 · 충청도관찰사 · 승지 등을 거쳐, 1732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특히 교학(敎學)의 진흥을 위하여 힘썼다.

1734년 대사간 · 예조참판 · 대사헌, 이듬해 승지 · 황해도관찰사, 1736년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그 해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여 도승지가 되었다.

1738년 형조판서 · 좌참찬을 역임한 뒤 이어서 호조판서 · 병조판서 · 판의금부사를 거쳐 1744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이듬해 다시 판의금부사가 되었으며, 그 뒤 판돈녕부사 ·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주4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고종실록』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경인증광사마방목(庚寅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228])
주석
주1

사마시 급제 : 『경인증광사마방목(庚寅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228])

주2

권당의 전말 : 『숙종실록』 53권, 1713년(숙종 39) 4월 22일. "성균관 유생들이 문원공 김생생을 종향하는 일로 권당을 하다"

주3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4

시호 추증 : 『고종실록』 13권, 1876년(고종 13) 11월 27일. "여성 부원군 민치록 등에게 시호를 주다"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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